“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경망스럽게도 꼬부랑 할머니가 즉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꼬부랑 할머니는 땅만 보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제가 요즘 마라톤을 뛸 때 힘이 부치면
몸이 굽는 생각도 아울러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허리가 굽는 것은 척추가 굽어서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허리에 힘이 부족하고 몸을 일으킬 힘이 부족해도 허리가 굽지요.
어쨌거나 허리가 굽으면 땅만 보게 되고 위를 보기가 힘들겠지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바꿔 묵상할 내용입니다.
허리에 힘이 없어 머리를 들지 못하면 우리는 하늘을 볼 수 없고
땅만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허리에 힘이 없어 머리를 들지 못하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보지 못하고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인해 멸망케 될 이 세상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세례를 받았어도 아직 믿음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이 무너질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지만 신앙이 강건한 사람은 오히려 이때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올려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강건한 신앙은 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폐허의 하느님 체험을 거듭하면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저는 하느님 체험이 많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실패의 체험이 많은 부부입니다.
그러니까 실패만큼 하느님을 체험하신 겁니다.
제가 알기로 이분들은 적어도 두 번 사업이 쫄딱 망한 분인데
어제도 지난 10년 동안 사업의 실패로 모든 것을 다 날리고
엄청 고생한 끝에 재산을 조금 건지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난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정말로 건진 것은 재산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날리고 얻은 하느님입니다.
재산을 조금 건지기까지 경험한 것들이 다 기적과 같은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녀들까지 하느님 체험을 하고 신앙에 열심하게 되었는데
제가 보기에 이것이 더 귀하고 고마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날리지 않고 어떻게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날아가고 사라지고 없어졌을 때 하느님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폐허의 하느님입니다.
이번 주 우리는 루카복음 21장을 계속 읽고 있는데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음에 감탄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이 성전의 돌이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오늘 예루살렘도 완전히 파괴될 거라고 하십니다.
사실 인간이 세워놓은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사람들의 눈은 거기로 향하고 그것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들이 세운 것을 보며 자기들이 감탄할 때
주님께서는 그것들은 다 무너지고 폐허가 될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파멸의 때가 주님께서 오시는 때이며
파멸의 끝인 폐허가 주님께서 계신 곳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세상 멸망의 때가 주님 오시는 때다.
그리고 인간이 세운 것이 허물어질 때가 하느님께서 오시는 때다.
그러니 모든 것이 허물어질 때 허리 펴고 머리 들고 오시는 주님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