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청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거라는 말씀은 그래도 수긍하지만
지체 없이 들어주실 거라는 말씀은 ‘글쎄?’라고 할 분이 계실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데
내게는 시간차가 있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험하였습니까?
사실 청하는 즉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면 낙심할 필요도 없고,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즉시 들어주시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며,
들어주실 때까지 끈질기게 청하라고 하시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시간차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체 없이’는
모순입니까, 아니면 달리 이해해야 할 것입니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유 없이 지체하시거나,
사랑이 없으시어 괜히 질질 끄시거나,
당신의 값을 올리기 위해 질질 끌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와 같지 않으시다는 얘긴데
우리는 들어줘야 할 것도 사랑이 없어 들어주지 않거나
들어줘도 생색을 내면서 들어주거나,
들어주겠다고 하고는 역시 사랑이 부족하여 까먹거나,
들어줘야 할 그의 때가 아니라 나의 때를 계산하여 들어주곤 하지요.
들어줘야 할 그의 때와 나의 때?
예, 사랑이 없으면 그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때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때를 골라 청을 들어줄 겁니다.
예를 들어 자판기에 돈을 집어넣고 단추를 누르면 원하는 것이
바로 나오듯 그렇게 바로바로 들어주고 다 들어주면
사람들은 보통 내가 청을 들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고 보답할 줄을 모르게 되기에 저같이 이기적인 사람은
청을 들어주더라도 어렵게 들어주거나 시간 끌다 들어주거나 하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우리가 감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주시더라도
우리가 감사드리는 것이 당신의 만족이기에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사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은총이 되도록 그러시는 겁니다.
우러나오는 감사는 감사의 인사를 받는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데 그것은 복이 넘치는
사람만이 감사를 할뿐 아니라 그 복이 자격이 없는 내게 주어졌고,
그것도 넘치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감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복음에서 같이 치유 받은 열 나병환자 가운데
이방인을 제외한 아홉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주어질 것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감사가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마운 것 중의 고마운 것은 고마운 어떤 것이 아니라 고마운 분 자신이고,
그런 고마운 분이 내게 있고,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분이 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하느님은 은총과 감사의 우리 문이 열리기만 하면
지체 없이 청을 들어주시고 은총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아니, 지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은총과 감사의 문이
왜 빨리 열리지 않나 하고 안달을 하시는 분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빨리 먹이고픈 엄마는 사랑하는 자식이
자기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좋아해주기를 바라고
아 하고 입을 딱 벌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잖아요?
우리 하느님은 더더욱 그러시겠지요?
신부님의 축하 말씀으로 행복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