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말에 열불이 난다고 합니다.
화가 난다는 말과 동의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열불이나 화는 자주 나는데
오늘 주님께서 지르겠다는 불은 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단어가 바로 <영적 불연재>입니다.
불연재란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는 재질을 말하는 것인데
제가 바로 영적인 면에서 불이 붙지 않는 불연재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인간적으로 열불이나 화가 자주 나기에
주님께서 붙이려는 영적인 불이 제 안에서 붙지 않는 것 아닐까 반성합니다.
인간적으로 화란 내 뜻대로 안 될 때 생기는 폭발적인 나쁜 감정이고,
그러기에 당연히 나 중심적인 데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영적인 불은 주님께서 붙이고자 하시는 것이니 좋은 것이겠지요.
우선 영적인 불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사랑이고 열망일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처럼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사랑의 열망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지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그러므로 이 불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는 열망입니다.
그러기에 이 불은 당연히 두 가지 방향으로 타오릅니다.
아버지의 뜻을 같이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힘을 합치는 것과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반대를 하거나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도록 우리가 성령으로 불타오르게 하십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 성무일도를 하다가 마침기도 때문에
마음이 뜨거웠던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희가 할 일을 일러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어,
오늘 모든 일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시작한 것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끝마치게 하소서.”
그리고 이것은 오늘 에페소서의 말씀처럼 성령을 통하여 내적 인간이
하느님의 힘으로 굳세어지고 하느님의 충만함으로 충만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영적인 불은 의노와 강한 관계의 단절로도 나타납니다.
주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셨던 분노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족 간의 분열이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성전정화를 하실 때 제자들은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이
주님을 집어삼킨 것으로 느꼈다고 요한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런데 분노가 뜨거운 표출이라면
분열과 관계의 단절은 냉정합니다.
아무리 아비라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반대하면 끊습니다.
아무리 어머니를 사랑해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착을 끊습니다.
형제간에 재산을 가지고는 다투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열도 다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는 우리가 영적인 불연재가 아닌지 반성하고
주님께서 지피시는 영적인 불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도록
그 성령의 불을 주십사고 청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