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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 수요일-위선할 수밖에 없는 우리

by 당쇠 posted Jun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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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길을 가다
초등학생의 어머니들로 보이는 이들의 얘기를 엿들었습니다.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들린 것은
그동안 큰 궁금증 중의 하나였던 것에 대한 대화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철을 탓을 때 요즘 아이들-청년까지 포함하여-거의 대부분이
어르신이 앞에 있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양보하는 모범을 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양보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없지 않을까 늘 생각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풀린 것입니다.

얘기인 즉 학교에서 자기 아이에게 선행일기를 쓰고
어머니 서명을 받아오라고 하였는데,
보니 여러 날 일기를 한꺼번에 쓴 것이었고
똑 같은 내용의 거짓 일기였기에 서명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행의 내용이 무엇이었냐 하면
집에서 어머니 도와드린 것,
길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길 친절히 가르쳐드린 것,
전철에서 자리 양보한 것이었는데,
이런 몇 가지를 시간, 장소, 상황만을 조금 바꿔서 일기를 쓴 것입니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선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그런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도 선행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거나 한 것입니다.

선행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선행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선행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 사이의
僞善의 Mechanism(매카니즘)이 너무도 잘 드러나는 얘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위선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인데
이것은 비단 요즘의 우리 사회 뿐 아니고
보편적 인간의 역사가 위선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너도 나도 선하지 않는데도 선행을 요구 당한다는 것이고
선행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록
선하지 않지만 모두 선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선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위선적입니다.
그렇다고 위선을 하지 않기 위해
악행을 일삼으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의 위선도
그렇게 나무랄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나는 위선적이지 않고 이들만 위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다면 이것이 더 고약한 위선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 의하면 인간이
나의 것이라곤 죄와 악습밖에 없고
나의 선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하느님의 것이기에
아무도 자기의 선과 선행을 자랑할 수 없는데
인간은 그 선을 하느님께 돌려드리지 않고, 즉
하느님의 선과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서 이루신 선을 찬미, 찬양하지 않고
자기 것인 양 자랑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의 제자이기에 이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위선하고픈 것을 꾹 참습니다.
그리고 내 놓고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비웃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저를 들여다보면 제가 더 나쁜 위선자입니다.
은근히 하느님의 선을 내 것인 양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위악도 좋지 않고
위선도 좋지 않지만
위선을 가리는 고차원적인 위선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구역질나고 참으로 나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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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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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뭉게구름 2008.06.18 12:48:37
    "나의 것 이라고는 오직 죄와 악습뿐,
    자랑 할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일뿐"
    그런데도 내것이 너무 많고, 뭔가를 자랑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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