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지난 3 주간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듣게 되는데
오늘 복음의 시작에 주님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이 주님을 떠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의 화답송 후렴은 지난주와 만찬가지로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입니다.
그러니까 이 둘을 연결시키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지 못한 사람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을 떠날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홍어 삭힌 것을 맛보지 않고 그래서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홍어전문점에 있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새겨보면 맛을 보고 맛을 알기까지
그 사이에 맛을 깨닫는 과정이 있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맛을 깨달은 결과로서 맛을 아는 것이고
맛을 봤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그 내용과 메시지를 정확히 기억치 못하지만
이 청준의 <독>이라는 단편소설을 보면 복 요리 전문가인 주인공은
복어 맛의 최고를 찾아서 계속 독을 조금씩, 조금씩 더 넣어갑니다.
복어의 독은 사람을 죽게 하지만 복 지리의 맛은 독을
얼마나 죽지 않을 만큼 넣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맛과 관련하여 단계가 있습니다.
맛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고,
맛만 보고 더 이상 맛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맛을 들였으되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조금 아는 사람과 아주 많이 아는 사람이 있지요.
주님의 말씀에 맛들이고 알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세상 즐거움이 주는 단 맛만 알고
주님의 말씀이 주는 깊은 맛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세상이 주는 단맛을 너무 탐하다 탈이 나게 될 때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주님 말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 맛본 것뿐이지 아직 맛들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세상이 주는 맛은 여전히 달고 반면에 주님의 말씀은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 모두 들어있는 깊고 오묘한 맛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의 인생이란 이 모든 맛을 깨달아 알아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실패라는 쓴맛을 통해서 주님 말씀의 단맛을 맛보게 되고,
수치와 모욕이라는 신맛을 통해 위로를 주시는 주님 말씀을 맛보게 되며,
비판과 충고라는 짠맛을 통해 우리를 교정하시는 주님 말씀을 맛보게 되고,
희생과 열정의 매운맛을 통해 사랑을 깨치시는 주님 말씀을 맛보게 되지요.
그러나 역시 주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하기에 맛을 봤다고 해서 아직
맛들인 것은 아니고 반면 세상맛은 달기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며,
선택을 한 뒤에도 맛을 들이기까지 거듭 선택을 해야 합니다.
쓰고 맵고, 시고 짜고, 그래서 그 맛이 거북하지만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거북하여 제자들이 떠난 뒤
남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하시고,
여호수아도 우상과 하느님 중에 누구를 섬김 것인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님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심을 믿고 알고 있는데
이런 주님을 두고 어디 가겠냐고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우리도 거듭된 선택을 통해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면 행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