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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

by 이종한요한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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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의 부활 (1463)

작가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1415- 1492)

크기 :벽화 프레스코 템페라 , 225×200cm,

소재지 : 이태리 산 세폴크로 (San Sepolcro) 시립 미술관


 

1. 들어가면서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인간적으로 철저한 실패의 상징인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여러 번 말씀하셨으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던 당신을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교 시작의 기틀을 마련하셨다.

세상에 부활이란 용어가 있으나, 엄격한 의미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에서 그 정의를 확인할 수 있다. 부활이란 결코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재생(再生)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오늘도 죽음이 없는 새 생명으로 살아나시어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부활축제를 지내면서 그리스도께서 여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죽음 후 다시 살아났다는 시체 소생(蘇生/甦生)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확인하고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 부활은 역사의 사건이면서 그리스도인들 삶의 근거,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삶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2. 작품.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나, 부활이라는 자체가 원채 초자연적인 사건이기에 이것을 회화로 표현하는 되에는 여러 가지 한계점을 느꼈으나, 여러 작가들이 자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것을 표현했다.

부활을 주제로 한 성화는 초기에는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부활 사건의 묘사가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활 사건의 의미성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서 피혁(皮革)업과 양모 무역에 종사하던 부유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면서 유클리트(Euclid) 기하학과 대수를 익힌 작가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부모들의 도움으로 좋은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며, 인근의 여러 도시와 로마 교황청에 까지 가서 학습을 했다.

작가는 하느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서 인간의 가치에 눈뜬, 인간적인 것의 표현에 대단한 열정과 관심을 보이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 신앙이 설득력이 있도록 전할 수 있는 경향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먼저, 이 작품의 배경은 마태오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무덤을 수직하던 경비병들이 잠시 잠든 사이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모두 황당한 정서에 빠지게 되었다는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수난하시자,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죽음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란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것을 막기 위해 경비병들을 배치해서 엄중히 지켰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황당한 수석사제들은 예수 부활의 충격을 축소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부활했다.’라는 소문을 퍼트렸다는 것으로 소문을 퍼트렸다는 바탕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들 몇 사람이 도성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 가드라도, 우리가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마태오 28,11- 15)

 

 

 

   작가는 기하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졸고 있는 병사들을 21의 비율로 배치하여, 졸고 있는 병정들과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적절히 표현해 겉으로는 막강한 것 같지만, 실상은 무기력한 세상 권력의 실상과 부활하신 주님의 강력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서 부활의 의미성이 시각적으로 강조될 수 있도록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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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묻어 두었던 죽음의 상징인 무덤 뚜껑을 열고 일어서셔서 부활의 상징인 십자가 깃발을 드시고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시는 일방, 힘의 상징과 같은 4명의 병사들인 죽음의 상징과 같은 졸고 있는 모습을 정삼각형의 구도 안에 배치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는 것을 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너무 당당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과거 예수님의 육신은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그분의 신성의 강조를 위한 것 이었다. 즉 영적인 것의 우위성을 표현하기 위해선, 육체적인 것을 상대적으로 위축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표현에 있어서도 적용되었으나, 인간예수의 육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절제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희랍 문화와 예술의 표현이 설득력을 지니게 되어 작가는 예수님의 육체 역시 과거와 전혀 다른 희랍 조각의 모습처럼 늠름하게 표현하고 다만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창에 찔린 옆구리의 모습만 보였다.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이 너무도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아래에 졸고 있는 병졸들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죽음이 생명으로 드러나는 반면 아무도 꺾을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세상의 권력의 실상은 졸고 있는 병정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무기력하고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은 죽은 존재임에도 부활하시어 생명감이 넘치는 반면, 병졸들은 힘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면서도 졸고 있기에 죽음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죽음의 흔적이 전혀 없는 당당한 자태와 밝은 빛으로 표현된 예수님과 그 아래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묻혔던 석관에 기대어 잠이 든 채 어둡게 표현된 병사들의 모습은 세상 힘과 승리의 한계성과 그리스도교 승리의 확실성과 영원성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다.

 

   예수님이 신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머리에 있는 후광뿐이고, 그분의 몸을 휘감고 있는 붉은 옷은 그분의 건강한 인성의 상징이다. 예수님 주위에 오른 편과 왼편은 겨울과 봄의 표현을 통해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 오른쪽은 음산한 겨울 날씨에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있고 왼쪽엔 물이 오르는 나무에 생명이 싹트는 봄의 모습이 있다.

   이 세상 인간들은 두 가지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즉 생명에서 죽음으로 가는 삶과 죽음에서 다시 새로운 삶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이 새로운 생명의 삶의 진면모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이라는 예수부활의 현실을 너무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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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쪽에 예수의 무덤을 수직하던 4명의 병사들이 조는 모습으로 있다. 이들은 현세 권력과 힘의 상징이며 세상 권력의 하수인들이나 무기력하게 조는 모습으로 석관에 기대어 졸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현세 세력의 하수인들이나, 자기들이 죽인 예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과 반대로 자신들이 졸고 있음으로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은 것과 같은 이들의 실상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덤을 열고 나오셔서 생명의 상징으로 서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세상 힘의 상징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예수의 죽음을 담았던 무덤주위에 있는 것이 세상 생명과 권력의 허망한 실상을 보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문을 바로 뜨고 앞을 응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졸병들은 졸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깨어있는 인생과 세상 물결을 따라 그냥저냥 살아가는 인생들의 의미 없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4명의 졸고 있는 병사들이야 말로 이 세상 세력들의 상징과 같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속박하던 사람들에게서 혼연히 해방되어 오히려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계신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 ( 에페 5, 14)

 

 

   작가는 기하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예수님의 정점으로, 졸고 있는 병졸로 이어지는 정삼각형구도와 아래로부터 병졸들로부터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역삼각형의 구도의 중간에 예수님을 배치함으로서 부활하신 그분이야 말로 세상의 왕이심을 힘차게 선포하고 있다.

작가는 부활하신 주님이야 말로 우리의 하느님이시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졸고 있는 병졸과 같은 허망하고 초라한 세상살이에 정신을 팔기 보다는 석관을 내딛고 서계신 하느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주님을 바라고 살아야 함을 힘차게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시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 ( 에페3, 1 - 4)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왕으로 당당하게 서 계신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승리자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이들도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힘차게 전하고 있다.

   교회 역사에서 혹독한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순교함으로서 교회의 기초를 마련했던 많은 순교성인들이 야 말로, 이 작품이 강조하고 있는 부활한 주님의 모습을 확고한 믿음으로 받아 들였기에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3. 역사적 배경.

 

   이 작품이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파괴되지 않고 남게 된 것에는 참으로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이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도시를 폭격하기 위해 출격 명령을 내렸을 때, 책임을 맡은 조종사 클락크(Clark)는 이 도시가 소장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너무도 유명하고 가치 있는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 도시에 폭격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

 

   이런 예술에 대한 혜안이 있던 이 장교의 용기 있는 결단에 의해 이 작품은 폭격을 피하면서 세상에 살아남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당시 기득권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갖은 악랄한 짓을 다했으나, 그분의 부활로 이 모든 것이 허망한 실패로 끝난 것처럼 한 혜안이 있는 장교의 용기 있는 결단에 의해 작품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부활의 작은 체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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