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평화”
부활 5주간 화요일(A해)
요한 14, 27-31
오늘 복음 역시 예수님의 고별사 한 부분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전, 주례 사제가 읽게 되는 경문에서 인용되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과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단어를 유난히 반복해 사용하시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평화”라는 단어를, 내일 복음에서는 “머물다”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네 차례 언급하십니다. 평화라는 축복을 얼마나 강조하시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열망하는 행복이 평화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비는 것을 당신의 인사말로 사용하셨고, 복음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평화를 이루는 일을 여덟 가지 참 행복의 하나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평화 건설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보셨습니다.
평화는 기쁨과 함께 인간의 행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내가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평화는 크게 두 가지 근원에서 온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주는 평화로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가정, 직장, 하는 일, 건강 등과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화는 지극히 소중하면서도 불안정합니다. 불안정하기에 불안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평화가 지니는 약점입니다. 어제까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는데, 오늘 건강진단을 하니 암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어제까지 웃다가 오늘 갑자기 슬퍼 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신앙을 통하여 주시는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평화” 또 “내가 주는 평화”라고 하시면서 “내”라는 말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만이 주실 수 있는 특별한 평화를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가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해 선물로 주시는 특별한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의 상태가 어떠하든, 곧 나에게 호의적이든 아니든, 기쁨을 주든 아니 주든, 상관없이 내적으로 평화를 누리게 해줍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칼로 목을 베이면서도 이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육신의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죽음을 자매로서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도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도 이 평화는 큰 힘이 되어 줍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일이 꼬이고 실패할 때도 있고 희망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수도원 공동체 삶에서도 언쟁이나 감정 대립이나 자존심 손상이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심란하거나 괴로운 마음이 여러 날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기쁨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큰 선물인 신앙을 통한 내적 평화를 구한다면, 이 모든 괴로운 순간을 견딜 수 있고 평온을 되찾고 그래서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행복의 정신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개인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인 평화를 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결코 이기적인 개인 평화가 아닌 서로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간절히 추구하도록 합시다. 비록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이 아닌 20세기에 쓰여진 기도문이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정신”을 잘 표현하는 “평화의 기도” 후반부 기도문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주여, 위로를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사하시는 “예수님의 평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를 진정으로 누리고, 더 나아가 이 평화를 모든 이가 누리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부활 5주간 화요일(A해)
요한 14, 27-31
오늘 복음 역시 예수님의 고별사 한 부분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전, 주례 사제가 읽게 되는 경문에서 인용되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과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단어를 유난히 반복해 사용하시는데, 오늘 복음에서는 “평화”라는 단어를, 내일 복음에서는 “머물다”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네 차례 언급하십니다. 평화라는 축복을 얼마나 강조하시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열망하는 행복이 평화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비는 것을 당신의 인사말로 사용하셨고, 복음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평화를 이루는 일을 여덟 가지 참 행복의 하나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평화 건설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보셨습니다.
평화는 기쁨과 함께 인간의 행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내가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평화는 크게 두 가지 근원에서 온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주는 평화로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가정, 직장, 하는 일, 건강 등과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화는 지극히 소중하면서도 불안정합니다. 불안정하기에 불안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평화가 지니는 약점입니다. 어제까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는데, 오늘 건강진단을 하니 암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어제까지 웃다가 오늘 갑자기 슬퍼 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신앙을 통하여 주시는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평화” 또 “내가 주는 평화”라고 하시면서 “내”라는 말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만이 주실 수 있는 특별한 평화를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주시는 평화가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해 선물로 주시는 특별한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세상의 상태가 어떠하든, 곧 나에게 호의적이든 아니든, 기쁨을 주든 아니 주든, 상관없이 내적으로 평화를 누리게 해줍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칼로 목을 베이면서도 이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육신의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죽음을 자매로서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도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도 이 평화는 큰 힘이 되어 줍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일이 꼬이고 실패할 때도 있고 희망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수도원 공동체 삶에서도 언쟁이나 감정 대립이나 자존심 손상이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심란하거나 괴로운 마음이 여러 날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래서 기쁨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큰 선물인 신앙을 통한 내적 평화를 구한다면, 이 모든 괴로운 순간을 견딜 수 있고 평온을 되찾고 그래서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행복의 정신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개인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귀한 선물인 평화를 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결코 이기적인 개인 평화가 아닌 서로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간절히 추구하도록 합시다. 비록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이 아닌 20세기에 쓰여진 기도문이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정신”을 잘 표현하는 “평화의 기도” 후반부 기도문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도록 힘씁시다: “주여, 위로를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사하시는 “예수님의 평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를 진정으로 누리고, 더 나아가 이 평화를 모든 이가 누리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특별히 선물로 주시는 '내가 주는 평화'를 받고,
또 유지해서,
그래서 기쁨의 나날을 보낼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