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줄 것이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오늘 연중 제 4주일의 주제는 <하느님의 말씀>과 <권위>입니다.
독서 신명기에서는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 말씀의 권위를 얘기하고,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주님 말씀의 권위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는 자기 말이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사실 모든 말들은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개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식입니다.
제가 작년부터 거의 1년간 모 일간지에 칼럼을 싣고 있는데
“우리사회가 새해에는 작년처럼 막말을 자랑삼지 않고
덕담과 축복의 말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새해를 여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요즘은 막말을 쏟아놓는 사람들이 권력의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막말로 대통령 되고 계속해서 막말로 세계를 흔들어대자
숭어가 뛰니 망둥이가 뛰고 꼴뚜기까지 뛰는 식으로
우리 사회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막말을 쏟아내어
세상은 너무도 천박해지고 말의 권위는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권위가 없고 어떤 말이 권위가 있습니까?
걸러지지 않은 감정적인 말, 거짓말, 자기를 떠벌리는 말,
남을 깎아내리는 말 등이 막말이요 권위가 없는 말이니
이와 반대되는 말들이 권위가 있는 말들이겠지요.
진리와 진실의 말,
사랑과 배려의 말,
겸손과 존중의 말 등이지요.
사실 이렇게만 할 수 있으면 아마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권위를 스스로 지닐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권위는 다른 것에 의지하는 권위, 곧
해박한 지식 유력한 사람과의 친분에 의지하는 말의 권위보다는
훌륭하다 할 수 있으나 신앙인에게 이것은 인간적인 권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권위를 얘기합니다.
철저히 자기가 없는 하느님의 권위입니다.
저는 이슬람에 대해 배우면서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멧이 문맹이라는 것이고,
이슬람은 자기의 창시자가 문맹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겁니다.
모하멧이 문맹이기에 쿠란이 인간 모하멧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모하멧이 그대로 옮긴 거라는 증거이고
그러기에 모하멧이야말로 진정한 예언자라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무식한 사람이나 어린이 입에서 신비의 말이 나오면
우리는 그 말이 그들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이라고 믿지요.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모하멧이 마리아처럼 동정성을 지녔다고 하는데
이렇듯 신적이고 영적인 권위는 자기 말이 하나도 없이
하느님의 말만 전하는, 동정녀와 같은 예언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주님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는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