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바오로 사도의 회심축일을 맞아 바오로 사도의 회심에 비춰
회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회심이란 우선 바닥에 엎어지는 것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바닥에 엎어지는 것은 자기 스스로 땅바닥에 앉거나
힘이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고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힘에 의해 넘어지는데
그것도 뒤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엎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길을 가다가 스스로 미끄러지면 뒤로 넘어지는데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 앞으로 엎어지는 것이고
더 강하게 표현을 하면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 갈 줄 알았는데 엎어져 가는 길이 좌절되는 것이고,
그것도 다른 누구에 의해 좌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누구가 누구일까요? 사람일까요, 하느님일까요?
다음으로 바닥에 엎어지는 것은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나는 서있다고, 괜찮다고,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는데 그것이 무너지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비참해지는 것일까요, 겸손해지는 것일까요?
바닥에 넘어진 채 그대로 있으면 비참해지는 거지만
바닥을 치고 올라가면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심의 두 번째 단계는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왜 바닥을 치고 올라가야지 겸손해진 거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교만하면 자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실패한 자기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겸손하면 가난하고 낮추어진 자기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현실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얘기를 합니다.
걸림돌을 디딤돌 삼으라고.
그런데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한 것을 오히려
딛고 일어서게 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겸손입니다.
다음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데 어디로 올라가는 겁니까?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겁니까, 하늘로 올라가는 겁니까?
말할 것도 없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것이 회심이 되려면
높은 자리가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사실 그까짓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그 힘든 회심을 하는 것 아닙니다.
하늘로 오르는 것이 아니면 회심도 아니지만 회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회심을 하는 것은 사실 그간 하늘을 모르거나
보지 않고 산 것에 대한 회심이고 그래서
회심을 제대로 하였다면 하늘을 보는 눈이 열릴 겁니다.
바오로는 눈이 멀었다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면서 새롭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늘이 무엇일까요?
그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할까요?
그것이 내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세속적인 나입니까?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한다면 아직 회심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회심하지 말고 세속적인 나로부터 회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