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세워 주십시오.”
저는 사무엘기의 오늘 얘기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금은 꼭 필요한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가?
임금을 세워달라는 어쩌면 당연한 요청에 왜 사무엘은 언짢아했을까?
임금은 꼭 필요한 것인지, 없으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해
제가 생각게 되는 것은 다분히 임금들에 대한 부정적 체험 때문입니다.
너희가 원한 임금들이 너희들 위에 군림할 것이고
너희를 잘 살게 해줄 거라 믿고 바라는 임금들이 오히려 못살게 할 거라고
오늘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경고하듯이 제가 경험한 임금들은 부정적입니다.
작년 우리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밀어내고 새로운 대통령을 세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에 대해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지만
저는 전의 대통령들보다 좀 나을는지 모르지만 큰 희망은 말할 것도 없고
기대도 그리 많이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제가 교만해서도
또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을 할까봐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물론 정치적 냉소주의나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떤 종류이건 인간적인 차원에서보다는
땅에서 하늘을 보고 하늘에서 땅을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러는 겁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한 마디로 차원이 다르다는 겁니다.
어른이 어린아이들과 같이 놀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예수님께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려고 했던
그 하느님 나라를 늘 염두에 두고 판단을 해야 하고 예언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독선이나 교만이 아니라 영적인 자부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세속주의와 물신주의에 대한 경계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오늘 사무엘기의 이스라엘 원로들처럼
정치 세속주의의 유혹과 도전이 늘 있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통치하는 하느님 나라는 하늘에만 있고
이 세상 통치는 온전히 임금이 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신앙인인 우리는 세상과 세속을 잘 구분함으로써
세속주의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언젠가 한 정치인이 독재에 대항하여 비판의 소리를 내는 교회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정치와 세상일에 간여하지 말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하늘만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하지도 계시지도 않으신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도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하느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데도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다고 하는 것이 세속주의이고
이들의 주장대로 하느님이 안 계신 세상이 세속인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프란치스코가 회개 시초에는 세상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뽈레또 환시와 나병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세속은 떠나고
제자 파견의 복음 말씀을 듣고서는 세상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속은 떠나고 세상 안으로는 깊이 들어가야 함을,
세상에 들어가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는 복음 선포를 해야 함을
또 다시 묵상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