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 우리 세대의 현실 안에서 성가정 축일 운운하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도 크기에 참으로 난감하기만 합니다.
요즘 혼족이란 말이 흔하고, 혼족 가정, 혼족 문화, 혼족 여행 등
혼족이 앞에 붙은 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혼족이란 혼밥과 혼술을 하며 홀로 사는 족속들을 말하는 거지요.
저는 이런 말들이 이처럼 유행할 때까지 이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를 현실로 인정하는 듯 다음과 같이 기사화를 합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혼자 즐기는 모든 것들이 외로움을 표현하기 보다는 당당함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혼밥, 혼술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죠. 21세기에 진입한 이후 최근 1인 가구의 비율이 27%까지 급증하여 4명중 1명이 1인 가구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혼족이 늘어나고,
혼족을 걱정하거나 문제시하지 않고 당연시 내지는 당당시합니까?
혼족이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경제사회적인 이유도 있긴 하지요.
그러니 이 사회적인 문제는 같이 걱정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됩니다.
문제는 이 사회적인 문제를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당연시 하거나 오히려 시대정신인 양 당당하게 포장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이웃을 위한 헌신의 차원에서 홀로 사는 것이 아닌
타락한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고립의 정신을 시대정신으로 포장하니
교황님이 <복음의 기쁨>에서 이를 우리시대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우리교회가 이 사회에 증거 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고립 정신에 대항하여 성가정의 정신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혼자가 좋고, 혼자서도 잘 살면 된다는 그런 정신이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 좋다는 정신과
같이 사는 것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어제로 저와 두 형제는 가리봉동에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초기의 프란치스칸 은사를 사는 것을 지향하는데
공동체를 준비하면서 초기 은사를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 성찰했고
오늘 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성찰케 됩니다.
육체노동을 하며 가난하게 사는 삶이 저희 삶의 한 축이라면
형제적인 공동체를 증거 하는 삶이 다른 한 축일 것입니다.
앞서 봤듯이 형제적인 공동체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함을 증거 하는 겁니다.
그런데 형제적인 공동체의 삶이란 동거자를 원수로 여기지 않고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본질이요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 아니지요.
동거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 목적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목적이지요.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예루살렘 성전을 같이 순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으로 치면 온 가족이 같이 성당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이 같이 하느님이 계신 성전에 가는 것도 성가정의 모습이지만
우리 가정이 바로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 되는 것, 이것이 참 성가정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순종과 사랑이 골간이 되는 가정생활을 제시합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얘기는 낡은 것이고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위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형제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우리 가정의 아버지로 모시고 자녀인 우리는 형제들이 되는 것,
형제들 모두가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
순종해야 할 분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뿐이고 형제들은 그저 사랑하며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는 공동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