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시는데 이러한 일들이란 어떤 일들입니까?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겁니까?
그것은 앞선 복음에서 얘기한 전쟁이 일어나 사람들이 마구 죽고
자연 재앙으로 하늘과 땅이 흔들려 모두 죽는 그런 일들입니다.
한 마디로 인재와 천재를 모두 일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모든 것이 망하고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거든
제발 그 때라도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있음을 알라는 호소입니다.
주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당신의 오심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와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봐야 하지만
평상시에는 보지 못하더라도 온갖 재앙이 닥치면 그때라도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보라고 호소하시는 겁니다.
다음으로 호소하시는 말씀은
하늘과 땅이 다 사라져도 당신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이 세상에 이미 와 있고,
이 세상이 사라져도 하느님 나라는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당신의 말씀만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위인들의 말은 죽은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이 사라지면 누가 있어 기억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의 말씀과 연결시켜도 좋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모든 것은 하느님 말씀에 의해 생겼습니다.
하느님 말씀 한 마디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 말씀에 의해 생겨난 모든 것이 말씀에 의해 모두 사라져도
그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사라지고 말 것들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허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초연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코헬렛서를 읽을 때마다 지니게 되는 태도입니다.
저는 뭔가 큰 일이 있고 그것에 집착한다 싶으면 코헬렛서를 떠올립니다.
그 시작은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를 볼 때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읽으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지요.
그깟 대학에 붙은들 그게 무슨 대수고 떨어진들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한 때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은 본래 다 지나가는 것인데
그런 것들에 뭐 그리 집착하고 목숨을 걸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진 것에 대한 일시적 공허감이 아니라
이런 근원적인 허무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근원적인 허무감을 통해 허무에서 나온 우리는
근원인 허무로 돌아가 근원에서 영원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