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 자연 보고 프로그램에서
괭이 갈매기에 대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번식기가 되면 수많은 어미 갈매기가 한 군데 모여 새끼를 까게 되는데
숫자에 비해 너무 자리가 좁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이 치열합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태어나면 환경은 더 비좁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바글바글한 데도
먹이를 잡으러 갔던 어미 갈매기는
새끼 갈매기를 알아보고 정확히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그 모양이 그 모양이고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도
어미 갈매기에게는 새끼의 모양과 소리가 다르고
그것을 정확히 알아보고 듣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요한복음은 착한 목자와 양에 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서 착한 목자는 삯꾼하고는 다릅니다.
삯꾼은 양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양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양들이 이리에 물려가고 흩어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잘 알고
양들도 그런 목자를 잘 알고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 하시며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를 당신과 아버지 관계에 비유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하시며
하나이신 분이 서로 아는 것과 같이
양들인 우리에 대해서 안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잘 아신다는 것은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피해 달아날 수 없다는 뜻도 되지만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어미가 아기의 상태를 잘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를 사랑하는 어미는 말도 못하는 아기의 상태를 잘 압니다.
똑 같이 우는 것 같은데
배고파서 우는 소리와 오줌을 싸고 우는 소리를 구별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실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십니다.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도 못 본 체 하실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만일 우리의 힘든 처지를 아시고도 응답이 없으시다면
못 본 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가장 적절한 때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내로이 기다리며
그분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내 양들이 아니라서 믿지 않지만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그러므로 주님의 양들이라면
주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믿고
따를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믿지 않고,
그래서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괭이 갈매기에 대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번식기가 되면 수많은 어미 갈매기가 한 군데 모여 새끼를 까게 되는데
숫자에 비해 너무 자리가 좁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이 치열합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태어나면 환경은 더 비좁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바글바글한 데도
먹이를 잡으러 갔던 어미 갈매기는
새끼 갈매기를 알아보고 정확히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그 모양이 그 모양이고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도
어미 갈매기에게는 새끼의 모양과 소리가 다르고
그것을 정확히 알아보고 듣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고 능력입니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요한복음은 착한 목자와 양에 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서 착한 목자는 삯꾼하고는 다릅니다.
삯꾼은 양들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양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양들이 이리에 물려가고 흩어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잘 알고
양들도 그런 목자를 잘 알고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 하시며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를 당신과 아버지 관계에 비유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하시며
하나이신 분이 서로 아는 것과 같이
양들인 우리에 대해서 안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잘 아신다는 것은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피해 달아날 수 없다는 뜻도 되지만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어미가 아기의 상태를 잘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를 사랑하는 어미는 말도 못하는 아기의 상태를 잘 압니다.
똑 같이 우는 것 같은데
배고파서 우는 소리와 오줌을 싸고 우는 소리를 구별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실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십니다.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도 못 본 체 하실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만일 우리의 힘든 처지를 아시고도 응답이 없으시다면
못 본 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가장 적절한 때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내로이 기다리며
그분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내 양들이 아니라서 믿지 않지만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그러므로 주님의 양들이라면
주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해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믿고
따를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믿지 않고,
그래서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날마다 그 음성에 귀를 열어둡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 당신만 따라갑니다
우리는 주님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 인데......
"우리가 해야할일은 주님을 인내로이 기다리고,
그분에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다"
감사드림니다.!!!
잘 알고 있지만
완전히 믿는 것은 조금 어렵고
또 완전히 따른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착한 양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