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선
"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지내왔다."는 표현을 곧잘 하는데, 실제가 그랬다.
지난 달에 영면하신 막내 숙부님을 비롯하여, 참으로 많은 어른들이 귀여워 하셨고 사랑해 주셨으니, 생생한 그런 기억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 수도원이라는 울타리에서 이렇듯 기쁘게 잘 지내는 것도 그런 삶의 맥락에서 주어진 크나큰 은총의 연장선이 아닐런가!
우선 1살에 아버지를 여의어 엄마의 생애가 두 배 이상으로 힘드셨을 테지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고 세 고모님들 하며 삼촌들- 외가 쪽으로는 엄마가 장녀이셨기에 밑으로 외삼촌들과 이모들이 많아, 아직 세 분이 살아 계시다.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나와의 관계 선상에서 얼마나 좋은 분들이셨는고! 물론 훌륭하신 엄마 덕분에 내가 덤으로 받은 사랑이었겠지만...
최근 하느님 품에 안기신 막내 숙부님만 하더라도, 함께 지내셨던 동작동과 흑석동 시절, 그리고 그분의 오랜 이민 생활을 통해 미국과 카나다를 두 번씩이나 초대해 주셨고, 내 생애 뭔 일로 극히 싫어하는 동토의 땅, 알라스카 까지 다녀 올 수 있었을꼬! 그렇듯 만나 뵐 일들이 참으로 많았었고, 묵묵하신 가운데 이런저런 사랑을 적잖게 주시어 새록새록 감사지정을 떠올리게 하심에랴!
어쩌면 평범한 사회인으로 지내다가 급작스럽게 모든 걸 정리하고 수도 성소로 선회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심을 잘 길러주신 할머니의 열심 덕분이리라. '바늘 가는데 실 가는 ' 격이 바로 할머니와 나와의 관계였으니까,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낚시감이 아니었겠는가.
잠깐 사회의 직장에 다닐 때도 내 주변엔 늘 사랑을 주신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 그 고마움에 대하여 일생을 통해 잊을 수가 없다. 특별히 현대건설의 박대리님 하며 국방부의 높았던 별, 김광돈 총무과장님...등의 분들 모습이 어제련듯 떠오르곤 한다.
물론 수도회에 몸담은 이후, 함께 지내셨던 선배 형제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가끔 주일이면 공동체를 위해 손수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시며, "맛세오, 외출하지 마십시오. 맛있는 쪼코렛이 있으니까요."라고 하시던 주꼰스탄시오 신부님의 자상하신 미소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떠지곤 한다. 다른 형제들에겐 좀 깐깐하시면서도 내게 만은 맛있는 걸 준비해 놓으셨다가 오랫만에 만날 일이 있으면 건네주셨던 조 벨라도 할아버지! 수련장이셨고 관구 봉사자이셨던 하멜키올 신부님은, 세월이 훨씬 지난 후에야 5명 수련자들 중에 내게 가장 사랑을 많이 주셨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고, 일찍 금성폐암으로 주님 품에 안기신 박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알게 모르게 다리 역할을 해 주시어 그 훈훈함을 잊을 수가 없다. 예루살렘 묘지에 안장되신 안베다 신부님의 남다른 따뜻하신 배려는 대 선배 형제님이시기 전에 아버지 같은 자상하심이었으니...
친 손주처럼 대해 주신 주변의 몇 분 은인 할머니 분들- 두 루시아 할머니, 안성의 김춘형 마리아 할머니, 아직 살아계신 박안나 자매님, 젤뚜르다 자매님과 동탄의 율리에따 할머니...등 -과의 친교도 참으로 따뜻해 내내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위령성월을 지내면서 매일 새벽 기도에 이 분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온 생애를 통하여 훈훈한 사랑을 안겨주신 분들은 비록 더 이상 뵐 수는 없을지라도 늘 영으로 만나뵙게 되니 이 얼마나 흐뭇할 감사함이랴!!! 행복의 원천은 하느님이시지만, 그 지류로서 늘 잔잔한 행복을 실어다 주시는 분들께 기도를 통해 고마움을 드리는 위령성월이어서 더욱 감사드리는 달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