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스케치 2
사람과 과일을 빨갛게 익혀내던
불덩이의 열기는 식고
청동화로 속의 마지막 불씨마저 가물거린다.
격정의 계절을 보내고 땀 밴 몸뚱이를 씻어주는
저녁바람이 속살을 파고든다.
첫 가을의 바람이니
자꾸만 자꾸만 살갗에 대고
문지르고 싶은 그 상쾌함,
유하고도 탄력 있는 감촉이다.
뭔가 형용 못할
가을의 흥분과 아련한 슬픔이 두 손을 잡는다.
누군가 앉아 줄 상머리에
싱그러운 가을채소와 과일로
온갖 성찬을 마련하여 마주 하고 싶다.
어린이와 같은 감성의 살결을
햇볕에 드러내고 앉아 있으면
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전율에
오묘한 가락을 울려내는 악기가 된다.
가을이다.
들리는 건 모두가 가을의 말씀이며
보이는 건 하나같이 가을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밤에도 잠자지 않는 가슴들이 많다.
귀뚜라미 쓰르라미도 온 밤을 울어 지새우고
전염병처럼 가을의 푸른 멍이 들려고 한다.
잠결에도 알아듣는 인기척에 눈을 뜨면
신선한 바람이 손님처럼 왔다 가고
성급한 낙엽이 가느다란 실바람에
나비 떼처럼 떨어진다.
잎들은 고향을 기억하는가,
청정한 잎사귀로 돋았던 그 날의 나뭇가지와
젊음을 불태우던 아름답던 시절들을...
눈썹 끝에 밤이슬이 내리고
두 볼에 새벽안개 덮이면
말없이 떨어지는 낙엽 되어
푸른 하늘 아래 드러눕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