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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축일-시선의 강탈, 관상의 상실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Aug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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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녀 클라라는 텔레비전의 주보성인입니다.

 

그런데 봉쇄 관상 생활을 한 성녀들이 많은데도 성녀 클라라가

텔레비전의 주보가 된 것은 전해져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인데

얘기인즉슨 어느 성탄절에 다른 자매들은 축일 미사를 드리려

작은 형제들의 성당에 갔지만 클라라는 병 때문에 못 갔습니다.

그렇지만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성탄절 미사 드리는 현장에 있었던 듯 다 보았던 것입니다.

 

텔레비전Television이라는 말은 한 곳에 있으면서도 Tele멀리

Vision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클라라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도 멀리 있는 것을 봤다고 하여 주보가 된 겁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 생겨났을 때 주보성인을 정하게 된 것이

실은 텔레비전이 얼마나 해로운지 그것을 경계하기 위함이고,

뒤집어 애기하면 텔레비전을 옳게 활용해야 한다는 뜻에서지요.

 

텔레비전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해성 때문에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많이 애기했습니다.

텔레비전에 빠져 책도 읽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을뿐더러

텔레비전이 전해주는 대로 받아들임으로 바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고도 하고, 인간다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데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은 거기에 빠져 아무 것도 안 하고

멍청이 바보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 폰이 나오고 난 뒤에는

텔레비전은 사실 문제도 아닙니다.

텔레비전은 그래도 같이 보기라도 했는데 휴대 전화나 스마트 폰은

개인용이기에 같이 있어도 각기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다른 것을 봅니다.

 

제가 요즘 아직 적응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기껏 식사하자고 불러놓고는

제 앞에서 스마트 폰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무엇을 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참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문화가 되어 같이 있으면서도 면전에서 소외시킵니다.

 

모두 스마트 폰만 보기에 같이 보거나 서로를 보는 것이 없습니다.

같이 있어도 보고 싶다거나 가까이 보니 더 아름답다는 것은

스마트 폰 앞에서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스마트 폰 때문에 보는 것에서 나무가 소외되고 사람까지 소외될 뿐 아니라

스마트 폰 때문에 보는 것을 빼앗겼고 아예 관상이 상실되었습니다.

스마트 폰 때문에 우리의 시선에서 존재들이 사라지고 소외될 뿐 아니라

아예 스마트 폰에 우리의 시선이 빼앗기고

그래서 볼 수 있는 능력과 볼 권리도 

클라라처럼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이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보고,

하느님 안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인 겁니다.

 

오늘 41년을 한결같이 다미아노의 십자가를 바라본 클라라의 축일에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같이 하느님을 바라본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를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 안에서 흔해져버린

시선의 강탈과 관상의 상실을 뼈아프게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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