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베드로와 바오로를 같이 축일로 지내는 것은
두 분이 전체 교회를 세우는 데에 두 기둥,
또는 반석과 기둥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지난 2천 년을 생각할 때 우리 교회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이 두 분이 그렇게 든든한 반석이었고 그렇게 굳건한 기둥이었을까?
2천 년을 교회가 이어온 것이 이 두 분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 때문이었는지 묻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봐도 창설자가 중요하지만
후계자들도 중요하고 그들이 제 2의 창설자가 될 경우에만
그 종교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되었음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두 분의 축일을 같이 지내고
대축일로 지내며 두 분의 위대하심을 기리는 것이고
기려야겠지만 그렇다고 주님을 떼어놓고
이 두 분의 위대하심을 얘기하는 것이어서는 당연히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바오로는 아주 당당하게 자기 삶을 회고합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바오로가 교만하다거나 허풍을 떨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지 않고 정말 훌륭히 살았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산 것이 자기의 힘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랑이고 사실 그렇게 살 수도 없었지요.
주님께서 뽑으시고,
주님께서 힘주시고,
주님께서 이끄셔서 자기들이 사도가 되고 직무를 완수했다고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도 믿고 저도 그렇게 믿으며
그렇게 두 분이 믿었기 때문에 훌륭히 완수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한 것은 비단 두 분뿐이 아닙니다.
이후 수천, 수만의 베드로 바오로들이 부르심을 받고 힘을 받아
주님의 교회와 공동체를 건설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리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역시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오늘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이 점을 깊이 묵상하고 역설하는 이유는
이런 믿음이 특히 제게 필요하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세웠고 앞으로 세우려는 것들도 많습니다.
포르치운쿨라 행진학교를 세우고,
조선족과 고려인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세우고,
내년이면 선교 협동조합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기에 세우는 것이고,
제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시는 것이기에 세울 때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고, 세울 수도 있게 되겠지요.
그리고 주님의 교회는 또한 신자들의 기도로 지탱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신자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고,
주님께서 베드로를 묶었던 사슬을 푸시고 감옥에서 꺼내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해주셔야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람입니다.
주님과 교회와 우리는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