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아브라함이 우리 뇌리에 각인된 것은 믿음의 조상이고,
그 믿음 때문에 하느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틀림없는 말이지만 아브라함은 또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에는 끊임없는 대화가 있고,
오늘만 해도 계속 대화가 오고갑니다.
그리고 그 대화, 곧 그의 기도가 참으로 우리의 모범인 것은
주님께서 먼저 말을 거시고 아브라함이 응답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을 내리셔도 잘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것에 홀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듣기보다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듣지 못하잖아요?
이런 우리에 비해 아브라함은 들을 채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잘 듣고
이해가 잘 가지 않거나 확신이 필요한 말씀은 오늘 보듯이
확신을 할 수 있도록 징표를 보여 주십사고 요청도 합니다.
오늘 얘기는 늙은 아브람이 별보다 많은 후손의 조상이 되고
끝없는 영토의 주인이 될 거라는 주님의 약속에
확신을 갖게 되는 신비체험의 얘기입니다.
시간은 해질 무렵이고
깊은 잠이 위로부터 쏟아지며
공포와 짙은(큰) 어둠이 아브람을 휩쌉니다.
여기서 해질 무렵이라는 것은 해가 사라져 어둠이 오고
낮 동안 아브람이 하던 것을 멈추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잠이 오기 시작하고 곧 어둠과 두려움도 닥칠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신비체험 또는 신비경에 빠지려면
신비한 잠을 자야하고, 짙은/큰 어둠 체험과
두려움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잠이란 육체가 피곤해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잠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잠들 때 창조를 이루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이 낮 동안 애써 맹금을 쫓는 것을 멈추시고
잠이 올 때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신비한 잠이 쏟아지면 인간은 짙은/큰 어둠과 두려움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큰/짙은 어둠은 천지창조 때 심연을 덮던 어둠과 같은 것이고
그러므로 두려움도 모기나 깡패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그런
시시한 두려움이 아니라 큰 두려움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두려움입니다.
오늘 창세기는 15장인데 앞 장 14장에서 조카 롯이 이민족에게 붙잡혀가고
아브람이 자기 종들을 데리고 가 조카와 조카의 재산들을 찾아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신이 방패 되어주시고
후손과 땅을 큰 상급으로 주실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나이를 더 먹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의 어두움과
끝없는 영토는커녕 현재의 땅과 재산마저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 중에 있는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절망과 두려움을 잠재우는 신비한 잠을 재우시고
큰/짙은 어둠으로 현세의 작은 어둠을 없애시고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큰 두려움으로 작은 두려움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신비한 잠을 자야하는데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낮이라고 생각하고 하던 나의 모든 동작과 행위를 멈출 때
하느님께서 위로부터 쏟아주시는 잠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