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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들-누가 더 행복할까?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May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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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자 윤지충과 동료 123위 순교자들의 축일입니다.

복자 윤지충은 조상의 제사 문제로 순교한 분일 뿐 아니라

조상의 제사 문제를 우리 조선 땅에 처음 야기한 분으로

말하자면 당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분입니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생각할 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 생각도 됩니다.

요즘 우리는 제사를 지내고 다만 신위를 모시지만 않는데

그때도 겉으로 제사를 지내되 신위를 모시지 않거나

신위까지 그냥 놔두더라도 믿지 않고 거짓시늉으로 놔두면 되었을 텐데요.

 

그때도 지금처럼 조상을 신으로 믿지만 않으면 된다고,

속마음이 중요하니 믿지만 않으면 제사를 허용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교회도 허용치 않았고 윤지충도 가르침대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각게 되는 것이 바로 투철함입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참으로 날라리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하라는 것은 작은 것 하나도 어기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였지요.

파공을 하라면 그 바쁜 농사철에도 주일에 파공을 하였고,

공심재도 지금처럼 한 시간이 아니라 전날 12시부터 충실히 지켰지요.

 

그러니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참으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편의주의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비해 투철하지 않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단지 열심하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런 편의주의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과거 하느님을 받들기 위해 나를 바치는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하느님이 나를 받드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부모자식 관계의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깍듯이 받들었는데

지금의 자녀에게 부모는 자식의 필요와 요구를 다 채워주는 존재일 뿐이고,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부모봉양을 잘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치 않습니다.

 

그런데 편의주의적인 신앙은 실은 이기적인 신앙이고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한 신앙생활이지

하느님 사랑 때문에 나를 희생하고 바치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까짓 제사문제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다니!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지금 나의 투철하지 못한 신앙을,

너무도 편의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구복적인 신앙을 반성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위한 희생과 사랑이 없는 신앙생활이

우리의 불행이라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이

우리보다 불행하지 않고 참으로 행복한 분들이라고 믿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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