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엠마오의 식사 (1648)
작 가 : 렘브란트 반 리진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크 기 : 68 X65cm
소재지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작가는 이 주제의 작품을 11번 그렸는데, 이것은 주문자의 요청이나 다른 이유에서가 아닌 작가의 각박한 현실을 신앙으로 사색하는 과정에서 여과된 자신의 신앙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예술의 길에 들어서면서 주위의 인정과 함께 인기 있는 초상화 작가로 부상했다. 초상화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 명사들이고 이에 작가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인정과 물질적 안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행운아가 되었다.
수많은 재산과 그의 영향력 아래 모이고자 하는 수많은 제자들로서 그는 성공한 예술가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서서이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섯 자녀를 남긴 채 사망하면서 그에겐 예상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 티투스도 젊은 시절에 자기를 앞서 세상을 떠나게 되니 작가의 가슴 저린 고통은 걷잡을 수 없었다.
상처를 하고 자식을 잃은 그는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 하녀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칼빈 교도들이 지배하던 화란 사회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게되고 그의 사회적 명성은 어이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여기에 겹쳐 미술품을 모으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으로 모은 재산도 날리면서 파산 선고를 당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명성 잃고 재산도 날리면서 그는 완전히 빈털털이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급변한 불운의 처지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를 찾게 되었으며 그의 예수는 이전에 그려진 전능한 하느님으로서 막강한 능력을 지닌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고난의 삶에 동참하신 예수님이였다.
이사야 53 장 2 절은 그에게 닥친 불운의 처지에서 가장 큰 위로와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예수이었다. 작가의 삶 역시 비록 자기의 실수나 운명에 의한 것이긴 해도 결과론적으로 이사야 예언서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을 닮게 되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 볼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사 53: 2-3)
작가는 여기에서 인간적 실패와 어려움을 통해 좀 더 심화된 신앙 체험 안에서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주님은 다 할 수 없는 절망과 어려움 속에 있는 작가에게 빛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런 처지에서 자기가 믿는 예수님의 참모습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되고 이런 예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암스텔담에서 만날 수 있는 30대 유대인 남성들을 관찰해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이 작품은 루카 복음 24장 13-35절에 나타나고 있는 엠마오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 사화 중 가장 감동적인 엠마오스 이야기의 하나이며 가톨릭 교회에서 거행하는 성찬례의 의미성을 너무도 극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어이없는 죽음을 보고 예수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떠나는 두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동행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다가 저녁때가 되어 어떤 집에 들어가 식사하시면서 기도하고 빵을 떼는 순간, 그분이 예수님임을 알아보게 되나, 감동적 충격은 잠시뿐 예수님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충격이 너무도 감동적이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면서 다시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감동적인 내용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깨닫게 된 제자의 회심이고 교회는 이것을 성찬 신앙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성서의 내용대로 예수님은 두 제자를 사이에 두고 중앙에 앉아 계신다. 장소는 이것이 성찬례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단순한 모습으로 설정했다.
이 장면은 엠마오스의 사건을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연관시키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은 더 없이 침착하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이나 승리감과는 거리가 먼 차분하고 약간은 피곤한 모습이시다.
위엄이나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간 삶에 지친 인간의 모습이나 그의 표정은 이 세상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고귀함이 깃들어 있다.
그 평범한 얼굴 주위에 후광이 비치고 있다. 전통적 성화에서는 후광은 화려한 왕관이나 다른 장식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이곳에는 너무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후광이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자기 삶의 체험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내하신 구세주 예수님의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는 그분은 바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평범한 삶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비범한 모습, 초월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손으로 빵을 떼는 주님 손 오른편에 빈 포도주 잔과 여관 주인 인듯한 젊은이가 접시에 담아오는 두 조각으로 잘려진 양의 머리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으로서 죽음을 이기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시기 위한 통과제의의 형상이다. 여관 주인 옆에 의자에 앉은 제자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으며, 등을 돌리고 있는 제자는 자기들의 여정에 동행 했던 사람이 예수님인 것을 알아보고 놀라는 모습이다.
두 제자들 앞에 빵을 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더 없이 평범하고 온화하다. 부활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이 줄 수 있는 일체의 신비적인 상상을 배제하고 일상의 삶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크리스챤 부활 신앙의 심원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 작가처럼 자기의 약함과 이해하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성찬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치유해주시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이다.
성서의 다음 내용은 성찬의 의미성과 엠마오 사건을 너무도 감동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앉았던가!” (루카 24:30-32)
This study is prepared by Richard Evans, student at Regent College, Vanvouver B.C., C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