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심연에서
가난한 소유도 풍성한 소유도
내게 있어선 오직 당신이 이를 재량합니다.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그 모든 영역을 관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어설픈 사유의 틈서리마다 당신은 갖은 양상의 촉매가 되어 주고
분수에도 넘치는 영감의 불을 놓아주셨습니다.
갖가지 애환과 모든 염원 가운데 당신은 말없는 현존으로 동행하셨지만
깊고 깊은 심연에서 조금씩 당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보지 않고 들을 때
듣지 않고 느낄 때
느끼지 않고 믿을 때
비탄과 좌절에서 새로운 소망이 솟구치듯
잠시의 시간에도 평생의 의미를 깨닫듯
내 전 존재에서 이처럼 거센 전율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현존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땐
내 안의 어느 곳에서나 당신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땐
무겁게 엎드린 침묵
그 어디서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행동으로 가장하는 게으름
희생과 겸손으로 가장하는 위선과 소심함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내 영혼의 섬약한 살결에 은혜로운 신선한 촉각을 일으켜
황송한 안배에 가장 맑은 눈물로 이를 보답하고 싶습니다.
홀로 휴식하는 가운데 가슴벅찬 당신의 사랑 안에서 머물게 해 주시고
언제나 무거운 짐인 자만심에서 저를 건져 주소서
2017. 5. 18.
월피정 하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