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악인과 맞서지 마라.”
주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악인과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의 제자라면 악인과 맞서지 말라는 말씀이고
우리가 만일 악인과 맞선다면 주님의 제자답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악인에게 꼬리를 내리고 피하라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악을 물리치지 말고 어떻게 되건 내버려두라는 말씀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악인이 두려워서 피하거나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말고 방관자가 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지요.
악과 악인 앞에 있지 말고 선과 하느님 앞에 있으라는 말씀이고
악과 악인에게 매어있지 말고 하느님 사랑으로 자유로워지라는 말씀입니다.
맞선다는 말은 도망치지 않고 같이 싸운다는 뜻이지만
마주 선다는 뜻이 더 근본적인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마주 서고, 무엇과 마주 서야겠습니까?
악보다 선과 마주 서는 것이 좋고
악인보다 하느님과 마주 서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악과 마주 서고 악인과 마주 서는 것입니까?
악과 마주하는 것이 좋고 즐거워서 그렇게 합니까,
악인과 마주함이 기쁘고 신나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마주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악과 악인에게 매이는 거지요.
그렇다면 왜 어쩔 수 없습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보통 힘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악인과 마주하는 것도 악인을 어찌 할 수 있거나
악인을 초월할 수 있는 힘 또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 때문에 불행한 사람은 악인을 떨치고 떠날 수 있는 힘이 없고,
하느님의 사랑이 없으면 악인을 어찌 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악인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이리 불행케 만든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불행하면 할수록 그래서 용서할 수 없으면 없을수록
자기를 불행케 만든 그 사람을 더 떠날 수 없습니다.
용서란 나를 불행케 한 그를 용서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를 위한 것 같지만
악인을 내게서 떠나보내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불행을 내게서 떠나보내는 것이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악인을 놓아줄 수 있는 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누구에게도 자유로울 수 있는 힘입니다.
선한 사람은 물론 악한 사람에게도 매이지 않을 수 있는 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선과 악을 능가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빛을 주고
똑같이 비를 내려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사랑을 지닐 수만 있다면
선과 악, 선인과 악인에게서 자유롭고 누구에게나 선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느냐 그것입니다.
관건은 역시 하느님 사랑 앞에 서는 것입니다.
훈제처럼 하느님 사랑의 기운을 한 번 쐬는 것입니다.
어렵고 그래서 처음에는 잘 안 되겠지만 하느님 사랑을 자주 의식하고
의지적으로 하느님 사랑 앞에 서 있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겁니다.
그 갈망과 노력을 보시고 하느님은 당신 사랑을 은총으로 내려주실 겁니다.
제비나 참새도 제 새끼의 짝 벌린 입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채워주는데
하느님이 우리의 짝 벌린 입을 당신 사랑으로 채워주지 않으시진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