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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연중 제11주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Jun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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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죄를 용서 받을수록 더 사랑한다는 논리는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느낄수록,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지만,

 그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내 안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느낄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크나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서 둘의 차이는,

 용서 받은 체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고,

 부족함이 채워진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물론 항상 우리를 채워주시려는 하느님의 은총의 관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조금 비어 있어도 가득 채워주시고,

 많이 비어 있어도 가득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어떤 구절은

 하느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후하게 주신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채워져 있다는 생각,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나,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 안으로 드러올 여지를 만들지 않습니다.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내 안의 나약함 때문에 죄에 넘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육체에 난 상처가 드러나야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죄로 인한 영혼의 상처도

 겉으로 드러나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 앞에서 우리 각자의 나약함을 겸손되이 드러낼 때,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그럴 때 우리는 다시 하느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괜히 다른 사람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걷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약함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없고,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용서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다는 말도

 무의미한 표현이 되고 맙니다.


 그 어떤 죄를 지었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결코 우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은

 오히려 우리가 그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나

 당신께로 걸어오기를 희망하시며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리의 이 길에 자비의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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