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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하느님께서 안식을 주시게 하자!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Nov 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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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위령의 날입니다.

위령慰靈은 한자어이기에 그 뜻을 풀어보면

위慰는 위로慰勞하다, 위안慰安하다를 뜻하고

령靈은 영혼靈魂을 뜻하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니 합쳐서 풀이하면 영혼을 위로 또는 위안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어제 모든 성인의 날에 이어서 위령의 날을 지내는 것이니

성인이 되지 못한 죽은 영혼을 위안, 위로하는 뜻이 다분히 있습니다.

성인이 되지 못한 영혼은 불쌍하다는 것이 여기에 깔려 있고,

이런 불쌍한 영혼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정말 그런 뜻이겠습니까?

아니 그런 뜻만이겠습니까?

 

우선 위로와 위안을 얻어야 할 영혼이라는 것이 죽은 영혼만이 아닐 겁니다.

산 이와 죽은 이 모두 불쌍한 처지에 있다면 모두 위로를 받아야 하고,

안식이 없다면 모두 다 위안을 얻어야 합니다.

 

사실 어제 모든 성인의 날이나 오늘 위령의 날을 지내는 의미는

우리의 통공의 교리, 통공의 영성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사도신경은 이렇게 믿음의 내용을 고백합니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 사함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죽음으로 산 이와 죽은 이가 결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믿음은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산 이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죽은 이가 산 이를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통한다는 것을 믿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죽은 이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평화와 안식이 없는 산 이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산 이를 위해서, 특히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기도하면서

돌아가신 부모나 정말 불쌍한 영혼을 위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없이,

산 사람들끼리도 이 사람 저 사람 사이의 단절 없이 기도하는 것이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의 취지입니다.

 

다음으로 위로와 위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위로하고,

안식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가 안식을 주는 것입니까?

 

그런데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죽은 영혼에게

산 우리가 어떻게 안식을 줄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을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줄 수 있고 또 줘야 하긴 합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위로와 안식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위로와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참 위로와 영원한 안식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 7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누구나 겪는 것을 저도 겪고 있습니다.

슬픔, 후회감, 죄책감과 같은 어두운 느낌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괴로워하는 분들을 많이 상담한 저였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런 것이 제게도 올 거라고 대비하였기에

이런 마음의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거나 피하지 않지만

이렇게 괴로워한다고 해서 제가 저의 어머니에게 안식,

그것도 영원한 안식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제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하느님께서 제 어머니를 더 사랑하시고,

제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영원한 안식은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이제 제 어머니로 소유해서는 안 되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것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그래서 이렇게 읊었지요.

“당신의 품 안에 쉬기까지는 내 영혼 안식이 없삽나이다.”

이것은 인간의 위로와 위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고백이고 기도인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나의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에서 나의 사랑은 시작돼야겠지만

나의 위로와 위안에서 그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나의 사랑은 나의 위로와 위안에서 시작되어

주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안식이 필요한 모든 영혼을 기도하는 날입니다.

죽은 이들뿐 아니라 산 이들까지,

가까운 이들뿐 아니라 기도가 더 필요한 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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