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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축일-싫어도 좋다고 하는 것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Jun 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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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은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바르나바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이나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남에게 선을 베푸는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순종 잘하는 사람이며,

특히 바르나바의 경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교회에 순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바르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자기를 파견하니

안티오키아로 가서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였고,

이 안티오키아 교회가 그리스도교로 불리며 정착하게 하였으며,

이 안티오키아 교회가 파견을 하니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그러니까 바르나바의 착함은 싫다지 않고 좋다고 하는 착함이며,

어디로 가라건 싫다지 않고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라는 곳이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가라는 것을 좋다고 하는 거며,

가라는 것을 좋다고 하는 것도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싫어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떠나는 것이 싫어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먹으니 떠나는 것이 싫은데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던 곳이 익숙해서 떠나는 것이 싫은데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그들을 떠나는 게 싫어도 좋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하던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떠나는 게 싫어도 좋다고 하는 겁니다.

하던 것 마저 끝내는 것이 진짜 더 낫기에 떠나기 싫어도 좋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제까지의 모든 것에 대해 애착을 버린 가난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 때문입니다.

있던 곳에 대한 애착보다 가라시는 분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은 싫지만 가라시는 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은 싫어도 가라시는 분이 그곳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수도생활 3막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계절로 치면 가을에 접어들은 것이지요.

 

바르나바를 생각하며 저를 생각해봅니다.

다른 곳으로 떠나라면 떠날 수 있겠는지.

 

이곳 수련소를 떠나 국내 다른 소임지로 떠나라면 못 떠날 이유 없고,

미련도 애착도 두려움도 없이 기꺼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국내가 아니라 해외 선교를 떠나라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때문이 아니라면 두려움 때문에 도저히 떠날 수 없습니다.

바르나바 사도처럼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저임을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이런 저에게 오늘 바르나바 사도는 도전도 하고 자극도 줍니다.

주님께서 가라시면 북한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떠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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