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성사(聖事), 자연 안에서 경탄하는 신비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ug 12,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성사(聖事), 자연 안에서 경탄하는 신비

 

자연 안에서 오래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자연 안에서 경탄한다.

자연과 하나 되어 자연의 한 부분으로

피조물을 통하여 건네시는 하느님의 계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드러내 주는 성사로써 존재하는 자연은

사람의 생각과 말로 좌지우지하지 할 수 없는 진실을 말없이 드러내 준다.

의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틀에 박힌 말을 하지만 그분을 위한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진실은 말로 증명할 수 없고 존재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존재로서 원천의 존재를 드러내 주지만,

자신의 의로움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내기 바쁘다.

 

나는 인간의 경험을 무시하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인간의 경험은 자연 안에서 하는 경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 안에서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해답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경험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일하신다.

관계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께서 너와 나를 연결하신다.

하느님 안에서 너와 나와 피조물과 연결되는 경험이 믿음의 내용이다.

 

인생의 신비를 풀지 못한 채 자신 안에 갇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고 흐르는 물결을 따라가듯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연 안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현실을 보고 배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연의 우두머리로 만들지 않았다.

지극히 단순하게 자연의 한 세포요 부분으로 창조하셨다.

자연 안에서 공존을 배우고 협력을 배우기까지

인간은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는 대상을 자유롭게 할 때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드러내 주는 표지요 성사(聖事)인 자연이

성사(聖事)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였다.

인간의 탐욕이 독점과 소유로 드러난 것이었다.

 

잘 지키고 희생과 재물을 많이 바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을 높이는 이들 중에는

인간적인 여러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공감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지만

여전히 증오와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관계의 중심을 독점하려고 한다.

독점과 소유는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재의 재난들은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들이다.

 

성사는 교회 건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원이나 숲에서, 자연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피조물 안에 숨겨놓은 진실을 발견하여

관계의 진리에 반영할 때 성사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친밀하게 공감하지 않으면 우리는 머리와 입술로만 예배하고

제한된 건물과 공간 안에서만 하느님을 찾을 것이다.

삼라만상과의 접촉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외롭고 공허해진다.

외롭고 공허해진 인간은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독점과 소유의 칼로 관계를 해치면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하느님의 자유까지 제한하려 든다.

결국 지배를 위한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성사는 일곱 가지만이 아니다.

자연이 주는 성사는 너무나 많다.

나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성사적 현존에 참여한다.

관계적 선의 확산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의 통치에 자신을 내어 맡긴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